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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토지와 정체성: 뿌리 깊은 관계
소수민족에게 토지는 단순한 경제 자산이 아니라 정체성과 생존의 근간이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특정 지역에 수세대에 걸쳐 거주하며, 그 땅에서 농사, 사냥, 어업, 채집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토지의 의미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문화, 종교, 공동체 기억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많은 소수민족은 조상과 신성한 장소를 땅과 연결해 이해하며, 토지를 잃는 것은 곧 조상의 영혼과의 단절,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확장과 국가 형성 과정에서 소수민족의 토지는 종종 강제 수용·몰수되었다. 예를 들어, 북미 원주민들은 18~19세기 미국 정부의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에 의해 대규모로 서부로 강제 이주 당했고, 그 과정에서 원래의 땅은 백인 정착민과 철도 회사, 광산 기업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토지 상실은 곧 문화적 붕괴와 생활 방식의 파괴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상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개발, 자원 채굴, 댐 건설, 대규모 농업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소수민족이 세대에 걸쳐 살아온 터전이 위협받는다. 예컨대 인도 동북부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소수민족 마을이 광산 개발 허가와 함께 철거되고, 주민들은 도시 변두리의 빈곤 지역으로 내몰린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빈곤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해체와 전통 지식 상실로 이어진다.2. 현대의 토지 분쟁 사례: 아마존에서 아시아까지
현대에 들어서도 토지권을 둘러싼 소수민족의 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브라질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산림 벌채와 대규모 농업 확장에 맞서 싸우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농지와 광산 개발을 장려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보호구역의 경계가 무너지고, 불법 벌목과 광산 채굴이 급증했다. 그 결과, 토지와 함께 원주민의 생활 기반과 생태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이들은 국제사회와 연대해, 유엔과 국제 NGO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며 산림 보존과 토지 권리 보장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원주민(Aboriginal) 토지 반환 운동이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1992년 ‘마보 판결(Mabo Decision)’을 통해 호주 대법원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땅)’라는 식민지 법리를 공식 폐기하고, 원주민이 오랫동안 그 땅을 점유·이용해 왔음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이후 ‘네이티브 타이틀(Native Title)’ 제도로 이어져, 일부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전통 땅에 대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광산·관광 개발과의 충돌은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미얀마 카친족과 카렌족은 군부와 기업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댐, 유전, 광산)로 인해 전통 거주지를 상실하고 있다. 필리핀의 코르디예라(Cordillera) 지역 원주민들도 수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며 수십 년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토지를 잃으면 언어, 농업 기술, 전통 의례 등 문화 전반이 붕괴한다고 경고한다.3. 국제법과 토지권 보장의 흐름
국제사회는 소수민족의 토지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엔 원주민 권리 선언(UNDRIP, 2007)**이다. 이 선언은 원주민과 소수민족이 전통적으로 소유·점유·사용하던 땅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고, 해당 땅에서 자원 개발을 할 경우 반드시 **자유롭고 사전 informed consent(자유롭고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ILO 협약 제169호(Indigenous and Tribal Peoples Convention)**는 토지 소유권, 자원 관리권, 문화 보존권을 국제 노동 기준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국제 규범은 각국의 법률 개정과 정책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캐나다는 ‘토지 청구 협정(Land Claim Agreements)’을 통해 이누이트와 다른 원주민 집단에 상당한 자치권과 토지 관리권을 부여했다.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에서는 사미족의 전통 순록 방목지 보호를 위해 **사미 의회(Sámediggi)**를 설치해, 개발 프로젝트의 승인 여부에 발언권을 주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의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현장에서 기업과 정부가 경제 논리를 앞세워 소수민족의 동의 없이 개발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고, 법적 소송에 돌입하더라도 시간과 비용 부담으로 소수민족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국제 규범의 실질적 이행과 더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4.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한 미래 과제
소수민족의 토지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와 기업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전에 해당 지역 공동체와 충분한 협의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단순한 보상금 지급을 넘어 장기적인 생활 보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소수민족의 **전통 생태 지식(Traditional Ecological Knowledge, TEK)**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세대에 걸쳐 축적된 자연 관리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기후 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아마존 원주민이 실천하는 전통적인 산림 관리 방식은 무분별한 벌목보다 훨씬 지속 가능하며, 호주 원주민의 전통 화재 관리 기술은 대형 산불 예방에 기여하고 있다.
셋째, 법적 권리 보장과 함께 문화 복원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토지 반환 이후에도 잃어버린 언어, 전통 농업 방식, 종교 의례를 되살리는 것은 공동체 회복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교육, 기록 보존, 청년 세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와 소비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이루어지는 농산물·광물·목재 구매가 소수민족 토지 침해와 연결되어 있다면, 소비자는 이를 인지하고 윤리적 소비를 선택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 공급망 인권 실사를 의무화해, 토지권 침해와 인권 유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토지권 투쟁은 단순히 땅을 둘러싼 소송이 아니라,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미래 세대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소수민족이 자신의 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는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이며, 이는 인류 전체의 이익과 직결된다.'세계의 소수민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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