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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의 그늘: 소수민족은 어디에 있는가
디지털 전환은 현대 사회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핵심 흐름이지만, 이 흐름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소수민족에게 디지털 전환은 기회의 상징이 되기보다, 또 하나의 배제의 구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 콘텐츠 생산, 사회적 표현의 기회가 누구에게 허용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도시 지역과 비교해 농촌·산간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많은 소수민족 공동체는 기초 통신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거나, 고속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디지털 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의 몽족이나 라후족 등은 정부의 디지털 행정 서비스, 온라인 교육, 금융 시스템 등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평등, 시민 권리 실현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장비나 플랫폼 자체가 다수 언어 기반으로 개발되어 소수민족 언어 사용자들은 사용조차 어렵고, 그들의 콘텐츠는 알고리즘 상에서 추천되지 않거나 가시화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소수민족이 디지털 공간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구조적 디지털 차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이면에 놓인 디지털 격차와 구조적 배제의 문제를 소수민족의 관점에서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권력 구조: 알고리즘은 누구를 선택하는가
오늘날의 디지털 생태계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누구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권력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권력은 알고리즘과 데이터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소수민족 관련 콘텐츠의 비가시화입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주요 플랫폼에서 소수민족 언어, 전통, 관습을 다룬 콘텐츠는 검색 상위에 노출되기 어렵고,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알고리즘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됩니다. 이는 곧 소수민족 문화가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고, 디지털 공간이 다수 중심적 문화를 강화하는 구조로 고착됩니다.
또한 소수민족이 생산한 데이터는 플랫폼 기업이나 국가에 의해 수집·분석되면서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상업화·정책화되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이는 **디지털 식민주의(Digital Colonialism)**라는 비판과 연결되며, 특히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지의 원주민 공동체는 자신들의 언어·문화·소비 정보가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의해 무단 활용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한편 디지털 기술은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내 위구르족은 얼굴 인식 기술, AI 기반 감시 시스템에 의해 이동과 생활이 철저히 관리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이 자유를 확장하기보다 억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디지털 기술의 중립성은 환상에 불과하며, 소수민족은 그 기술이 어떻게 설계되고, 운영되며, 적용되는가에 따라 배제될 수도, empower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문화로: 소수민족의 디지털 활용 사례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반드시 소수민족을 배제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부 소수민족 공동체는 이를 역이용해 문화 보존, 정체성 회복, 공동체 연결에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전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디지털 언어 복원 프로젝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소수민족 언어들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통해 언어 교육, 문서화, 음성 녹음 등을 진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체로키족은 자국어를 디지털 키보드로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앱을 통해 자녀들에게 전통 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인디지너스 미디어 플랫폼들은 유튜브, 트위터, 팟캐스트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를 직접 소개하며, **주류 미디어가 외면했던 현실을 발신하는 ‘디지털 자기표현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캐나다, 뉴질랜드,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소수민족 청년들이 자신의 언어와 시각으로 지역 이슈를 다루며, 디지털 공간을 새로운 정체성 구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지도 서비스, 드론 기술, IoT 기반 자원 모니터링 기술 등도 전통적인 생태 지식과 접목되어 사용되며, 지역 환경 보호와 공동체 계획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이 반드시 중앙집중적이거나 상업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대안적 기술 활용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즉, 기술은 어떻게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소수민족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기술 정의를 위한 제도와 연대의 과제
소수민족이 디지털 전환에서 배제되지 않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사회적, 기술적 노력이 함께 필요합니다. 우선 각국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있어 지역 간, 계층 간, 민족 간 격차를 해소해야 하며, 이는 단지 인터넷 연결을 넘어서 언어·문화 기반 접근성 보장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둘째, 플랫폼 기업과 기술 개발자들은 디지털 기술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인권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공정성, 다언어·다문화 접근성 보장, 데이터 주권 존중 등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윤리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국제사회와 시민사회는 디지털 권리를 새로운 인권 영역으로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 감시, 정보 공유, 지역 간 연대를 추진해야 합니다. UNESCO, UNDP, 인권 단체 등은 다양한 소수민족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설계되고 실행되는가입니다. 소수민족이 기술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설계자, 비평자로서 참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디지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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